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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분자의 조립 설계자인 나노 과학자들이 보기에, 디엔에이(DNA)는 자연에 존재하는 아주 훌륭한 나노 재료다. 디엔에이의 이중나선 구조 자체가 현대 과학이 흉내 내기 힘든 ‘분자의 자기조립’ 능력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디엔에이를 이루는 염기인 구아닌(G)은 시토신(C)과, 티민(T)은 아데닌(A)과 만날 때 결합하는 성질(상보성)을 지닌다. 그래서 G-C와 T-A는 찰떡궁합의 짝이다. 예컨대 G-A-T-C라는 염기서열 가닥이 C-T-A-G라는 염기서열 가닥을 만나면 저절로 지퍼처럼 달라붙는다. 이런 디엔에이의 성질을 이용해 갖가지 모양의 나노 물질 구조를 조립·제작하려는 연구가 기초연구 수준에서 가속화하고 있다. 디엔에이 조각들을 레고 블록처럼 써서 복잡한 회로를 조립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최근엔 바이러스에 설계된 디엔에이를 넣어 바이러스 껍질 단백질의 성질을 바꿈으로써 원하는 나노 물질을 쉽게 달라붙게 해 신소재를 만들려는 나노 연구도 등장했다. 왜 나노 과학자들은 디엔에이나 바이러스로 눈을 돌리고 있는 걸까? 무엇보다 디엔에이나 바이러스가 이미 존재하는 천연의 나노 구조물인데다, 염기서열을 적절히 조작하면 여러 꼴의 나노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고, 다른 나노 물질들을 선택적으로 달라붙게 하는 조립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6일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만난 박성하 교수(물리학)는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길이의 디엔에이 가닥들을 이용해 만든 여러 나노 구조물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미 열십(十)자 모양, 대롱 모양의 디엔에이들이 만들어졌고, 또 격자 모양의 디엔에이 기판 위에 단백질로 쓴 ‘DNA’ 영문자도 눈에 띄었다. 이런 디엔에이 구조물은 박 교수가 참여했던 미국 연구팀에서 개발해 <사이언스> 등에 발표된 바 있다. 신기하긴 하지만, 디엔에이로 나노 구조를 설계하고 건축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박 교수는 “디엔에이 분자의 자기조립 능력을 이용하면 복잡한 나노 회로도 만들 수 있고, 다른 물질을 담는 공이나 그릇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염기서열 정보를 연산 처리 단위로 쓰면 이론상 디엔에이 컴퓨터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ㄱ자, 십(十)자, 티(T)자 모양의 기본 블록을 써서 새로운 3차원 디엔에이 구조물들을 만들고 있으며 초보적 디엔에이 계산기를 구현하는 연구도 벌이고 있다. 실 모양의 디엔에이 가닥 중 어느 부위를 꺾이게 하거나 다른 가닥과 붙게 하려면 염기 A, T, C, G의 순서를 잘 설계해야 한다. 1㎚보다 작은 염기 사이 거리나 염기 결합 각도 등을 제어해야 한다. 디엔에이 블록을 설계하는 일은 어렵지만 조립은 의외로 간단하다. “설계된 제짝을 찾아 결합하기 때문에 디엔에이 조각들을 섞어 주기만 하면 1㎖ 용액에서 수십조 개의 디엔에이 구조를 동시에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디엔에이 구조물에다 탄소나노튜브나 금 입자, 코발트산화물처럼 원하는 기능을 지닌 나노 물질들을 ‘코팅’하면 소자나 센서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분야에서 한국인 과학자들이 세계적 연구 성과를 잇따라 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해 1월 박성용 미국 로체스터대학 박사가 참여한 미국 연구팀은 금 입자(10㎜ 크기)에 디엔에이 가닥을 붙여 금 입자들이 육면체 등의 3차원 나노 구조물로 조립되는 과정을 구현했다. 이 연구는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발표됐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디엔에이는 나노 물질의 자기조립을 일으키는 나노 프로그래머”라며 “디엔에이를 다른 물질에 붙여 전체를 결정화하거나 2차원 평면에 붙이거나 하는 연구들이 여러 연구팀에서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나노 조립에 쓰는 디엔에이 가닥은 유전자 정보를 지니지 않아 무해하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이달 초엔 한국인 연구자들이 주요 연구자로 참여한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이 바이러스 유전자를 조작해 바이러스 껍질 단백질의 성질을 바꿈으로써 배터리의 ‘양극’ 재료와 탄소나노튜브들이 바이러스 껍질에 달라붙게 하는 방식으로 차세대 배터리 물질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연구는 미국 백악관 기자 브리핑에서도 소개됐다. 연구 논문의 제1저자인 이윤정 연구원(박사과정)은 이메일에서 “바이러스를 이용해 태양전지를 만들거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 연구도 진행중”이라며 “나노와 바이오 융합 연구는 미래 과학기술의 핵심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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