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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0년 8월 13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30300075&code=990100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흐름



세월이 흘러 벌써 50을 훌쩍 넘었다. 2019년이 2020년이 되고, 칠월이 팔월이 되듯이, 해(歲)와 달(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우리는 세월(歲月)이 흐른다고 한다. 흐르는 것은 시간뿐이 아니다. 강물도 흐른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도,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20대를 다시 살 수 없는 것도, 강물과 시간의 흐름 때문이다. 흐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다.


강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을 보는 것이 강물의 흐름을 짐작하는 방법으로는 제격이다. 잠깐 동안의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왼쪽에 있던 나뭇잎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면, 강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강물이 흐르는 속도는 v=x/t로 적혀서 나뭇잎이 움직인 공간상 위치의 변화량(x)과 시간(t)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강물의 흐름은 둘의 비율이자 경쟁이다. 고속의 셔터 속도로 찰칵 사진 찍어 시간을 멈추면 흐름이 없고, 공간상의 한 점에 시선을 고정해 바라보면, 방금 그곳에 있었던 물체는 잠시 뒤 자리를 옮겨 시야에서 사라진다. 모든 흐름에는 공간과 시간이 서로 얽혀있다. 공간과 시간의 경쟁이 흐름이다.


시간도 흐른다. 나뭇잎으로 강물의 속도 v=x/t를 재는 방법을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도 눈 딱 감고 적용해보면,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t/t=1이 된다. 시간의 속도가 1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시간에 대한 시간의 비율로 빠르기를 재는 것이어서 시간의 흐름을 이 방식으로 얘기하는 게 어불성설이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같은 것을 서로 비교해봤자, 새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독자도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라. 단 한번도 시간 자체가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밖의 무언가의 변화가 일정한 방향성이 있을 때,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할 뿐이다. 7월이 8월이 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가 지나 낮이 조금씩 짧아지는 것을 보거나, 장마철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달력을 한 장 넘기면서, 우리는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배꼽시계도 마찬가지다. 아침밥이 소화되어 배가 고파지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는 것이 배꼽시계의 작동원리다. 시간도 강물처럼 흐르지만, 둘은 서로 다르게 흐른다.


강물은 도대체 왜 흐르는 걸까? 산에서 바다로는 흐르지만, 거꾸로 바다에서 산으로 흐르는 강물은 없다. 물리학에서는 강물이 흐르는 이유를 중력에 관련된 에너지를 가지고 설명한다. 강물이 산에서 바다로 흐르고, 동전이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는, 낮은 곳에 있을수록 에너지가 낮기 때문이다. 모든 물체는 더 낮은 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공간 안의 모든 흐름은 낮은 곳을 향한다.


시간이 흐르는 이유를 물리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에 늘 동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엔트로피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음식물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이 조각조각 분해되어 흡수되는 소화의 과정에서, 위장은 비고 엔트로피는 늘어난다. 손목시계가 저장된 에너지로 움직인다면, 배꼽시계는 엔트로피 증가로 움직인다. 강물은 에너지로 흐르고, 세월은 엔트로피로 흐른다.


세월이 흐르면 세상도 변한다. 함께 흘러 강물의 흐름을 알려주는 나뭇잎처럼, 세상의 변화를 명확히 드러내는 사건들이 있다. 한 국회의원의 옷차림이 나뭇잎이 되기도 했고, 고민 없이 익숙했던 절름발이라는 표현의 나뭇잎이 세상의 강물에 새롭게 떠오르기도 했다. 나란히 함께 흘러, 있었지만 몰랐던, 새롭게 드러난 것들은 죽비가 되어 나를 깨운다. 세월이 흘러 50대에 훌쩍 접어든 나의 생각이 이어진다. 흐르는 강물 위 작은 나뭇잎을 바라보며 세상의 흐름을 떠올린다. 저 나뭇잎과 같은 시대를 나는 함께 흐르고 있는지, 저 산 계곡물 좁은 과거만을 기억하며 제자리에서 우물쭈물 맴도는 꼰대 물방울은 아닌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30300075&code=990100#csidx3031f3afb0e58cfa7a5c4b47ffa54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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