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korean english

게시판

Home > 게시판 > 새소식

세계일보 2020년 8월 19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200819519396?OutUrl=naver


인체 세포보다 박테리아 많은 인간의 몸은 독립된 개체인가
개체성은 생명체로 국한 안 돼… 기업·도시 등도 새 정의가 필요

나는 독립적인 개체일까? 나와 너를 하나가 아닌 둘로 셀 수 있을까?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지만, 생물학에 관련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한 독자가 많으리라.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개체는 주변 환경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공간 안에 국소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를 일컫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나의 밖과 피부라는 인체조직으로 구분되고, 몸 밖 환경을 인식해 내 몸은 다음의 반응을 정한다. 더우면 땀 흘리며, 이곳저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있는 나는 분명한 생물학적인 개체로 보인다. 우리 집 귀여운 강아지 콩이도, 여름 밤 나를 괴롭히는 모기 한 마리도.

개체의 개념을 생물학은 진화의 관점에서 좀 더 넓게 확장하기도 했다. 흐르는 강물을 환경으로, 그 위에 떠 있어 강물의 영향을 직접 받는 작은 배를 개체로, 그리고 배 안에 담긴 배를 만드는 방법이 적힌 설계도를 유전자로 비유해보자. 설계도는 배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배는 강물의 영향을 받는다. 강물에 뒤집히면 배와 함께 설계도도 물속으로 사라지지만, 살아있는 개체는 소멸하기 전 거의 같은 설계도가 담긴 다른 개체를 만들어낸다. 후대로 이어지는 것은 배가 아니라 설계도다. 개체는 유전자의 탈것이다. 바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도킨스의 관점이다. 생물학적 개체는 외부와 공간적으로 구별되는 반응과 적응의 기본 단위다.


독자가 위의 얘기를 듣고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다시 생각해 보시길. 생물학의 개체의 개념은 사실 그리 명확지 않다. 인체 세포보다 훨씬 더 많은 박테리아 세포가 내 몸 안에 함께 살아, 내안에는 나보다 내가 아닌 것이 더 많다. 피부 안쪽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사니, 이들 박테리아가 나라는 개체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담긴 유전자가 다르니, 그렇지 않다고 답해도 딱히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은 개체의 의미를 더 곤혹스럽게 한다. 개미 한 마리를 개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개미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지 못하니, 도킨스의 의미로는 개미집단 전체를 한 개체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개미집단이 개체라면 일개미 한 마리는 나라는 개체를 구성하는 내 몸 세포 하나를 닮았고, 수개미는 날아다니는 정자 세포다. SF영화 ‘솔라리스’에는 넓은 바다 전체가 하나의 지적 생명체인 외계행성 얘기가 나온다. 공간 안 일정 규모의 국소성은 생물학적 개체가 가져야 할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올해 3월, 학술지 ‘생명과학 이론’(Theory in Biosciences)에 출판된 논문 “개체성의 정보 이론(The information theory of individuality)”은 엔트로피를 활용해 개체성의 새로운 정의를 시도한다. 개체성은, 그렇다, 아니다, 두 개의 답만 허용되는 질문이 아니라, 연속적 스펙트럼 위에 놓이고,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층위와 척도에 따라, 한 개체는 더 상위 수준 개체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논문의 저자들은 과거의 정보를 미래로 안정적으로 충실하게 투사하는 존재로서 개체를 정의한다. 개체와 환경의 임의적 경계를 확장해보는 과정에서, 미래로 투사된 정보의 양이 최댓값에 이를 때가 바로 개체의 증거가 된다. 이렇게 제안된 개체는 대상이 아닌 동적 과정에 붙여진 이름이 되고, 우리가 익숙한 공간적 국소성은 개체의 정의와 무관해진다. 저자들이 제안한 새로운 접근법의 적용대상은 생명체로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수학적 방법을 적용해서 우리는 세포와 생체 조직의 개체성뿐 아니라, 기업, 정치 집단, 그리고 온라인 그룹, 심지어는 도시의 개체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나는 개체일까? 내 몸 안 세포 하나는 개체일까? 수많은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간사회는 개체일까? 그렇다면, 지구라는 시스템 전체도 개체일까? 우리가 외계의 생명체와 조우할 때, 우리는 개체를 구분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생물학의 접근법이 아닌 정보이론의 수학적 접근법이 개체성이라는 중요한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까?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8 [경향신문 2021.02.04]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역설 물리학과사무실 2021.02.05 103
77 [경향신문 2021.01.07]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풍경 물리학과사무실 2021.01.08 316
76 [한국일보 2020.12.25]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답 없는 세상, 정답 있는 물리학은 희망의 학문이죠" 물리학과사무실 2020.12.28 392
75 [경향신문 2020.12.10]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인연 물리학과사무실 2020.12.14 444
74 [세계일보 2020.12.09] [사이언스프리즘] 황제펭귄의 추위 대처법 물리학과사무실 2020.12.14 413
73 [문화일보 2020.11.24] 김범준 교수 / 물리학만으론 사회현상 이해 한계… ‘애정 어린’ 미시적 시선 함께해야 물리학과사무실 2020.11.27 518
72 [경향신문 2020.11.12]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계 물리학과사무실 2020.11.16 521
71 [세계일보 2020.11.05] [사이언스프리즘] 상온 초전도 물질의 발견 물리학과사무실 2020.11.09 615
70 [경향신문 2020.10.15]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자석 물리학과사무실 2020.10.16 751
69 [세계일보 2020.09.23] [사이언스프리즘] 유리는 고체일까, 액체일까 물리학과사무실 2020.10.05 848
68 한정훈 교수님 책 출판 - 물질의 물리학 file 물리학과사무실 2020.10.05 881
67 [경향신문 2020.09.10]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소멸 물리학과사무실 2020.09.11 911
» [세계일보 2020.08.19] [사이언스프리즘] 나는 한 개체일까 물리학과사무실 2020.08.24 1053
65 [경향신문 2020.08.13]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흐름 물리학과사무실 2020.08.14 1109
64 [경향신문 2020.07.16]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뾰족 물리학과사무실 2020.07.20 1241
63 [세계일보 2020.07.15] [사이언스프리즘] DNA가 오른쪽으로 꼬인 이유 물리학과사무실 2020.07.20 1291
62 [세계일보 2020.06.10] [사이언스프리즘] 지진은 어떻게 발생할까? 물리학과사무실 2020.06.12 1198
61 [경향신문 2020.05.21]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틈새’가 일깨워준, 있는데 잊은 것들 물리학과사무실 2020.05.22 1187
60 [세계일보 2020.05.06] [사이언스프리즘] 존재의 이유 물리학과사무실 2020.05.11 1258
59 [경향신문 2020.04.22]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사이와 거리 물리학과사무실 2020.04.28 1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