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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9년 12월 4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042107005&code=990100



세상에 100보다 더 큰 수는 없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주변을 둘러봐도 100보다 더 많은 수가 모여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덧셈을 배우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100에 100을 더하면 더 큰 수인 200이 된다. 아주 큰 수에 아주 큰 수를 더하면 아주 더 큰 수를 얻는다.


그럼, 세상에 가장 큰 수가 있을까? 가장 큰 수는 없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다. 누가 A가 가장 큰 수라고 주장하면 A+1은 A보다 더 크다고 얘기해주면 된다. A가 얼마여도 우리는 항상 A보다 더 큰 수를 생각해낼 수 있다. 가장 큰 수를 종이에 적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수를 향해 갈 수는 있다. 1에서 시작해 점점 1씩 더해 나가면 우리는 무한(無限)을 향해 나아간다. 무한을 향해 한 발씩 전진할 수는 있어도, 무한에 도착해 깃발을 꽂을 수는 없다. 무한은 아무리 다가서도 늘 한참 저 앞에 보이는 무지개를 닮았다. 저 앞에서 우리에게 손짓해 한 발씩 다가설 수는 있어도, 닿을 수는 없다.


수학의 무한은 재밌는 특성이 많다. ‘1, 2, 3 …’처럼 적히는 자연수의 개수는 당연히 무한대(無限大)다. 그렇다면, ‘… -3, -2, -1, 0, 1, 2, 3 …’처럼 적히는 정수의 개수는 무한대의 두 배일까? 어느 누구도 끝까지 세어 무한대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로 비교할 수는 있다. 내가 가진 셔츠와 바지의 개수가 같은지 다른지 찾아내는 방법과 같다. 셔츠와 바지를 하나씩 짝을 지어 보는 거다. 더 이상 짝지을 셔츠가 남지 않았는데 바지가 남았다면 바지가 많은 것이고, 셔츠가 남았다면 셔츠가 더 많은 것이다. 내 옷장에 분홍색 셔츠는 딱 하나 있지만, 청바지는 여럿이다. 하나씩 짝지어 보고 나서 바지가 많은지, 셔츠가 많은지를 알아내는 위 방법에서 분홍색 셔츠에 내가 가진 청바지 중 어떤 것을 짝짓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진 모든 바지를 비싼 바지에서 싼 바지의 순서로 가격을 기준으로 늘어놓고, 셔츠는 색상이 밝은 쪽에서 어두운 쪽으로 늘어놓고 순서대로 짝을 지으나, 거꾸로 바지를 색으로, 셔츠를 값으로 늘어놓고 짝을 지으나, 셔츠가 많으면 셔츠가 남고, 바지가 많으면 바지가 남는다. 두 집합에 들어있는 원소의 수를 비교할 때, 정확히 이 방법을 쓴다. 만약, 한 집합의 원소 하나마다 다른 집합의 원소 딱 하나를 골라 일대일 대응시켰더니, 두 집합에서 남는 원소가 하나도 없다면 두 집합에 들어있는 원소의 개수는 정확히 같다. 물론 바지와 셔츠를 대응시키는 방법이 여럿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대일 대응의 방법도 하나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짝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만 보이면, 두 집합의 원소의 개수가 같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자연수와 정수의 개수는 둘 모두 무한대지만, 같은 무한대인지, 다른 무한대인지를 ‘셔츠-바지 짝짓기’의 방법으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자연수는 원래처럼 ‘1, 2, 3 …’의 순서로 늘어놓고, 정수는 ‘0, 1, -1, 2, -2, 3, -3 …’의 순서로 0에서 가까운 것부터 순서대로 늘어놓자. 그리고는 앞에서 시작해 자연수 하나를 같은 위치에 놓인 정수 하나에 차례로 일대일 대응시키면 된다. 1에는 0, 2에는 1, 3에는 -1의 식으로 말이다. 자연수 하나에는 정수가 정확히 하나가 대응되고, 정수 하나에도 자연수가 정확히 하나 대응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연수와 정수 사이를 하나씩 짝짓는 일대일 대응을 찾았으니, 따라서 정수의 개수와 자연수의 개수는 똑같다는 결론을 얻는다. 둘 모두 무한대인데, 정확히 같은 무한대다. 0보다 큰 정수가 자연수다. 따라서 0보다 큰 정수의 개수는 자연수의 개수와 같다. 정수 중에는 0보다 작은 정수도 많다. 이들이 또 자연수의 개수만큼 있다. 흥미롭게도, 정수의 개수의 절반은 정수 전체의 개수와 정확히 같은 무한대다. 무한대는 절반으로 나눠도 줄지 않는다. 정확히 같다. 무한대에 1을 더해도 무한대고, 1을 빼도 무한대다. 무한대에 무한대를 더해도 같은 무한대다. 길이가 1인 선분에 들어 있는 점의 개수는 길이가 2인 선분에 들어 있는 점의 개수와 정확히 같은 무한대다. 증명은 독자의 연습문제로.


무한은 수학에서도 널리 연구되는 재밌는 주제이지만, 물리학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뉴턴의 운동법칙 ‘F=ma’에서 가속도 a는 속도 v의 미분이고, 속도 v는 위치 x의 미분이다. 미분은 두 시간 사이의 간격을 무한히 잘게 쪼개는 과정을 통해 정의된다. 12시 정각에 물체의 순간적인 속도를 알려면, 12시에서의 물체의 위치와 12시에서 아주 짧디 짧은 시간 후의 물체의 위치가 얼마나 다른지를 재서, 둘의 차이를 방금 이용했던 무한히 작은 두 시점 사이의 시간 간격으로 나누면 된다. 이처럼 미분은 무한히 작은 무한소(無限小)에서 정의된다. 무한소나 무한대나 둘 모두 무한에 관계한다. 주어진 크기를 무한번 쌓으면 무한대지만, 무한번 자르면 무한소다. 미분의 반대과정인 적분도 무한에 관계한다. 적분은 무한소로 전체를 부분들로 나눈 다음에, 부분을 무한번 더해 얻는다. 원의 면적을 적분으로 얻으려면, 무한소의 중심각을 갖는 삼각형 모양의 부채꼴의 무한히 작은 면적을 무한번 더하면 된다. 물리학에서, 가속도를 적분하면 속도, 속도를 적분하면 위치가 된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무한과 비슷한 것들이 있다. 인류가 다다르고자 하는 이상이 그렇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 경제적인 풍요가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고 누구나 풍요로운 세상, 학생들을 시험점수 하나로 줄 세우지 않고, 한 명 한 명 유일한 존재로 존중하는 세상,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 누구나 꿈꾸는 이런 세상에 유한한 시간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꿈을 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 앞산에 걸쳐 있던 무지개는 막상 도착하면 또다시 저 멀리 물러나 보인다. 꿈은 거리가 아니라 방향으로 측정되는 물리량이다. 난, 사람들이 10년 뒤, 100년 뒤가 아니라 천년 뒤, 만년 뒤의 꿈을 꾸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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