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가속기硏, 거대강입자충돌기 6월 가동
원형 자석트랙 속 양성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 후 충돌
질량 원천 '힉스'·끈 이론 '초대칭 입자' 등 규명 실험
80개국 과학자 구슬땀… 한국도 13개大 연구팀 동참
부딪혀라, 새 우주가 열린다. 스위스 제네바 인근의 유럽가속기연구소(CERN) 거대강입자충돌기(LHC)가 논
의 착수 24년, 건설 승인 14년 만에 드디어 올해 6월 가동된다.
지구상 최대 입자가속기를 손에 넣게 된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우주와 자연의 본질을 한 꺼풀 더 벗겨낼 수 있
으리라는 애간장 타는 기대로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HC 프로젝트에 참여할 80개국 7,000여명의
과학자 가운데에는 물론 한국의 물리학자들도 포함돼 있다.
■ 드디어 밝혀지는 질량의 정체
LHC의 대표적 임무는 질량의 원천인 힉스 입자를 찾는 일이다. 중력을 발휘하는 특성인 질량은 일상생활에
서 너무나 낯익지만 물리학적으로는 정체가 오리무중이다.
한 가지 가설이 힉스 입자라는 것이 있어 다른 입자들과 상호 작용해 질량을 부여한다는 것인데, 가설이 제시
된 지 44년이 되도록 실험적으로 확인이 안 됐다. 힉스는 물리학 표준모형이 제시한 근본 입자 중 관측이 안
된 채 남은 마지막 입자다.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어떤 근본 입자보다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LHC는 어떻게 힉스를 본다는 말일까? LHC는 원둘레 27㎞나 되는 최대 실험장비인 만큼 기존의 페
르미연구소 가속기보다 빠르게 입자를 가속시켜 더 강력한(높은 에너지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고속 질주
하는 열차일수록 충돌하면 크게 찌그러지는 것처럼 입자의 충돌에너지가 크면 보다 무거운 입자가 생겨난다
(이것이 에너지 보존 법칙이다).
LHC는 원형 자석 트랙을 따라 양성자를 빛의 속도의 99.9999991%로 질주하게 한 뒤 정면 충돌시킨다. 이 때
충돌 에너지는 페르미의 가속기보다 14배나 높은 14테라전자볼트(TeV). 서울대 김수봉 교수는 “양성자 질량
의 400배까지의 입자를 볼 수 있는 수준”이라며 “힉스의 질량을 양성자의 100~200배로 추정하므로 대체로 힉
스의 발견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 새로운 세상을 찾아서
힉스의 발견이 표준 모형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끈 이론이라는 차세대 이론을 열어 젖힐 관측도 수행된다. 바
로 초대칭 입자의 발견이다. “관측된 모든 근본 입자는 진정한 최소 단위인 끈이 다르게 진동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끈 이론은 근본 입자들의 초대칭 짝을 가정하고 있다. 초대칭 입자가 발견된다면 이론적 주장에 그쳤
던 끈 이론은 첫번째 실험적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초대칭 입자는 우리 우주의 23%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우리 우주에서 눈에 보이는 물질은 전체 질량
의 단 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암흑 물질(23%)과 암흑 에너지(73%)인데 뉴트랄리노와 같은 초대칭 입자
가 바로 암흑 물질의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암흑 물질에 대해선 여러 후보와 다양한 가설이 병립하고
있어 암흑 물질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이후 연구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이 된다.
또한 LHC는 납 원자끼리 충돌시켜 빅뱅 직후를 재현하는 실험도 한다. 지금은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루고 있
는 쿼크를 독립적으로 떼어낼 수 없지만 초기 우주는 쿼크와 쿼크를 묶는 입자인 글루온이 죽처럼 뒤섞인 ‘쿼
크-글루온 플라즈마’ 상태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밖에 끈 이론이 가정하는 4차원 이상의 여분의 차원, 원
자 수준의 마이크로 블랙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한국 물리학자들도 참여
국내에서는 성균관대 최영일 교수를 대표로 한 13개 대학의 공동연구팀이 LHC 실험에 참여한다. 고려대 박
성근 교수팀, 경북대 손동철 교수팀, 서울시립대 박인규 교수팀 등이 있다.
입자를 검출하는 2개의 대표적 검출기가 ATLAS와 CMS인데 박성근 교수가 10여년 전부터 CMS 제작에 참
여한 것을 비롯해 국내 연구자들은 CMS 실험에 몰려 있다. 다만 강릉대 김도원 교수팀은 쿼크-글루온 플라
즈마를 관측하는 ALICE 실험의 일원이다.
LHC가 실험에 착수한 뒤 쏟아져 나올 어마어마한 데이터 분석은 또 다른 도전이다. 박인규 교수는 “양성자
빔이 부딪치면 초당 4,000만 번의 충돌이 일어난다. 각각의 충돌을 2.5메가바이트 파일로 저장한다면 초당
100테라바이트(테라=1조)의 데이터가 쏟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데이터량은 저장, 검색, 분석이 모두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CERN에 있는 슈퍼컴퓨터는 순식간에 의
미 있는 정보만 골라낸다. 하지만 고르고 고른 초당 100개의 사건만 기록해도 1년간 산출되는 데이터량은 10
페타바이트(페타=1,000조)로 CD롬으로 쌓으면 높이가 150㎞나 된다.
그래서 지금 물리학자들은 세계 곳곳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그리드 컴퓨터 구축에 여념